Interview
식물에서의 영감을 그리는 '마담규'
Q.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상 속에서 만나지게 되는 식물들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방법으로 따뜻한 기운을 전하고 싶은 마담규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작가 마담규 입니다.
Q. 식물을 소재로 그리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학교 다닐땐 전공 때문에 주로 사람을 많이 그렸는데요. 7년 전 즈음 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힘들어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곁에서 할 수 있는게 더이상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한참 디자이너로 활동 할 당시 소설 마지막 잎새의 이야기 처럼 식물의 이파리를 어떤 간절한 바램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몇 해 동안 이파리만 그렸던것 같아요.
이파리부터 그리기 시작하면서 식물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죠.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3년 정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그 작업을 했습니다.
'바램'에 대한 시리즈를 몇해 동안 그렸는데요. 그림 그리는 행위가 더 이상 스스로에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던 순간에 늘 조언을 많이 해주시는 교수님께서 "정말 그림 안 그릴 꺼야? 끄적끄적 드로잉이라도 해. 손을 놓치지마. 다만 그 드로잉을 좋은 종이에다가해. 선을 그어도 되고 사람 그려도 되고 대신 손을 놓치만 마.."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종이 드로잉만 1년 이상 하게 되었는데 먼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게 즐겁고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작업을 해야하는 이유가 많이 바뀌었던거 같아요.
제가 워낙 식물을 좋아 하기도 하고 산이나 공원, 한강 둔치에서 걷는 것도 좋아해서 자연스레 식물을 관찰하게 되었어요. 계절이 달라지면서 바뀌는 모습, 이파리 라는 특정 오브제를 벗어나서 그 모습들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변형시키거나 다르게 배열하거나 혹은 단순화 시켜 또 다른 구성을 해보니 좋더라구요. 그렇게 되면서 드로잉과 회화의 중간 정도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자연스레 드로잉이나 선으로 표현하는 그림들을 사물에 접목해보면 좋을 것 같아 Things of madame kyou 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죠.
Q. 식물을 바라볼 때면 더욱 따뜻함을 느끼거나 위로를 받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하잖아요. 누군가가 물을 주고 해가 잘 드는 쪽으로 몸을 돌려 줘야 하고요. 그 시절 소중한 분을 간병 할 때 딱 이런 마음 이였던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정성을 들이냐에 따라 활짝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동물보다 묘한 책임감이 있어요. 동물은 주인에게 와서 뭔가를 요구 할 수 있는데, 식물들은 그게 아니니까 바라볼 때 측은하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반대로 키우거나 바라보면서 위로 받을 때도 있고요. 근데 가끔 죽여요.(하하) 제가 못 키우는 식물들이 있어요. 허브 종류들 이예요. 허브는 정말 통풍이 잘 되어야 하는데 여건상 그렇게 못해줄 때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왠만한 식물은 잘 키우는 편이예요! 저희 어머니가 다 죽어가는 식물도 살려내는 능력이 있으셨거든요 . 제가 그걸 좀 닮았나봐요. 심지어 어머니가 키우셨던 식물을 아직도 제가 받아서 키우는 것도 있어요.
Q. 식물 시리즈 중 특별히 애착가는게 있나요?
‘윈터드림(Winter Dream)’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 제가 드로잉으로 방향을 바꿨을 때의 첫 시리즈 그림 중 하나예요. 마담규의 첫 사물인 블랭킷도 이 윈터드림 시리즈에서 시작되었구요. 사실 윈터드림은 차(Tea) 이름이에요. 추운 어느 겨울밤 무척 힘든 하루를 보내고 우연히 들린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사장님께서 추천 해주셨던 차가 윈터드림이었어요.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마셔보니 너무 좋더라구요. 사과맛도 나고, 시나몬맛도 나고, 허브티 같기도 하고요.
(저는 술은 잘 못하지만)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술을 한 모금 마셨을 때 몸에 싹 흡수 되면서 좀 짜릿한 느낌처럼. 그 윈터드림의 첫 느낌이 그랬고, 그날 밤 몸과 마음이 다 따뜻해진 느낌이랄까? 그 때의 순간과 대화, 생각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즈음에 드로잉을 시작했던 작품에 ‘윈터드림’이란 이름을 붙였죠.
작품에 글을 함께 써 놓았어요. 전시 때 작가가 계속 상주를 못하니까, 그림을 그렸을 때의 느낌이나 떠올랐던 글들을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만 봐도 느낄 수 있게 그 것들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사람들의 피드백이 너무 좋았어요.. 그림과 그 글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되게 힘들었는데 위로가 되었다고, 고맙다고 DM도 보내주시고. 제가 더 감사했죠.
Q. 그때의 계기로 변화가 또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림과 글의 연결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전시장 왔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은 감동과 위로를 받게끔 하고 싶어서 그렇게 연출 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면 점점 더 주변을 보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림 사고 싶은데 아직 그럴 형편이 못되어요 ’ 라고 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림을 소장하시지 못해도 전시회나 다양한 협업들을 통해서 더 많은 감정들을 전달하고 싶었고 그것만으로도 보시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게 ‘사물들’이예요. 작품보다는 조금 덜 부담스럽게 일상에서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말이죠.
Q. ‘사물들’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저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굿즈(goods)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굿즈는 만드는 방법이 기성제품에 그림을 얹는 것이라면 저의 사물은 좀 다르게 접근하죠.
저의 그림에서 시작되어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후 무얼 만들까를 결정해요. 그러다보니 이 결정한 사물이 내 그림과 만나서 정말 보기에 좋을지, 실제 쓰임은 어떨지. 이 사물을 만나는 사람의 감정까지도 생각하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해요. 그래서 굿즈라는 영어 단어로 통용되지만 저는 더 긴 호흡으로 ‘사물들’이라고 표현한거예요.
Q. 전시하면서 특별히 생각나는 분들이 있으세요?
2020년 무목적 갤러리에서 진행한 전시 때 이화여자대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는 외국인 친구들이 생각나요. 그때가 의례적인 호우 시절 이었어요.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나도록 100호, 200호까지의 큰 작품들을 숲처럼 레이어를 하고, 향을 더하고, 류이치 사카모토와 같은 류의 음악도 함께 틀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동시에 느껴지도록 연출했죠.
갤러리 공간 마지막에 중정이 있었어요. 문을 열면 비가 살짝 떨어지게끔 연출을 하고, 거기에 비를 맞아도 되는 드로잉 패브릭을 툭 걸어 놓았죠. 친구들이 그 중정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 모습에 당황했지만, 왜 우는지 물어봤어요. 자기가 살던 남아프리카 동네의 산. 그 산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어릴 때 그곳에서 느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다고 말해주더라구요. 아마도 코로나가 처음 시작된 즈음이라 본국으로 갈수도 없는 그런 힘든 시기에 더 감정이 북받쳤었나 봐요.
나중에 장문의 DM 이 또 왔었죠. 이런 감정을 한국에 와서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요. 아직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글과 영어를 섞어가며 DM을 주고 받고 있어요. 언어는 안 통하는데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그대로 전달되었구나 하는걸 느꼈어요.
Q. 그림과 함께 향, 소리 등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연출하셨네요.
작품을 준비하며 자연스레 공간을 생각하게 되니까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게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모험 일 수 있었어요. 무목적 전시장은 회화 작품을 전시하기에는 큰 창이 많았어요. 그리고 장마철이기도 했고요. 채광이 너무 좋아 그림이 훼손될 수도 있고 해서 주변에서는 ‘왜 하필 여기서 해?’ 하는 질문도 많았죠. 일반 갤러리하고는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처음 그 공간을 들어가는 순간 결심했어요. 모험이였을 수도 있었죠. 냄새, 소리, 습도 이 모든걸 이 곳에서 숲으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딱이다 싶었죠.
조금 더 스펙트럼을 넓혀서 더 많은 사람한테 즉각적으로 반응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요. 그 모든 과정과 행위가 작업하는 사람으로서의 개인적으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Q. 언젠간 하고 싶은 또 다른 전시 형태가 있으실 것 같아요.
정말 최고로 하고 싶은 건 천고가 높은 곳에서 가상의 큰 나무를 만들고 싶어요. 작은 피스들을 설치해서 큰 나무로 보이게끔 하는건데. 줄기가 뻗어진 형태가 아니라 흔들리는 이파리들로 구성하는거죠. 그 이외에는 전시장엔 아무것도 없고 단지 음악과 향을 더한 정도죠. 그 작은 피스들은 저의 그림도 있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그림들을 함께 더해 만들어 지게끔 하고 싶어요.
지난번 전시 때 마지막 부스에 'What is your forest?' 라는 문구와 함께 종이와 색연필을 뒀었거든요? 관람객분들 한 분 한 분이 열심히 다 그려서 붙이기 시작했죠. 천창을 타고 올라갈 정도로요. 그 이후로 작가인지 누구의 그림인지 구분 없이 막 섞어서 큰 공간에서 연출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죠. 이것도 하나의 공연처럼 어떤 연출로 인한 행위이구나 싶었고. 나중엔 꼭 그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때 참여했던 그분들의 그림은 물론이구요.
또 다른 하나는 실제로도 시도해보고 있는건데, 폐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예요. 내일이면 부서질 건물이지만 어느날 밤에 식물을 가득 채워 숲을 이루게 하는거예요. 다음날 아침에 일하러 오시는 분들이 보셨을때 그 감정? 그게 너무 궁금해요. 결국 그 벽화를 철거 하겠지만 어쩌면 그날 그 하루가 그분들께 정말 특별한 날로 기억될지 몰라요.
마지막 잎새에서 이웃집 할아버지가 소녀를 위해서 그녀가 보이는 창문을 통해 보이는 벽에 이파리를 그리잖아요. 이파리란 오브제를 처음 찾은 거는 그런 이유였다면 행위 자체를 동경하는건 벽화작업 자체가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전시 때나 공간 연출 할 때 벽화 작업을 하고, 외부 벽화를 의뢰 받아서 하기도 해요.
그 영향인지 현재 유화작업때도 일반적인 유화 그리는 것과 다른 방법을 쓰고 있어요. 밑에 베이스를 벽에 미장질하는 느낌으로 깔고 그 위에 유화 물감을 이어가요. 시멘트 위에 스며지듯 그려지는 느낌이 좋아서요. 빈티지한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 오래되어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그런 상태를 표현하고 싶은 게 마지막 잎새의 시작에서부터 다 연결된 것 같아요.
Q. 소재도 그렇고, 흔치 않는 방식이예요.
보통은 텍스쳐를 느낌을 더하기 위해 물감에 섞어서 하는데, 저는 미리 바르고 시작하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붓을 바를 때 원래 유화는 오일리하게 미끌어지는 맛으로 그리는데, 저의 그림은 오히려 스며드는 느낌으로 그려지는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어요. 완전 스며들어서 붓 하나 지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되게 인고하는 느낌이예요. (웃음)
Q. 시도해보고 싶은 소재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재는 지금 샌드 작업이 너무 재밌어요. 오히려 그건 생각했어요. 돌을 직접 빻을까? (웃음) 제가 많이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텍스쳐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길 때는 아마도 언젠간 원하는 돌을 빻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왜냐하면 돌의 재질, 감도, 굵기, 종류에 따라서도 그 맛이 다르니까요.
지금은 캔버스 위에 어떤 나만의 벽을 만드는 작업이 제일 재밌고, 조금 더 깊이 빠지고 싶어요. 이후에는 이 벽 자체를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 할 것 같아요.
Q. 계기가 따로 있으셨어요?
벽화 때문에 하게 되었어요. 벽이 쉽게 구해지지 않으니까. 모종의 합의가 있어야 되니까요.(웃음) 서촌의 더 마틴 과 지인의 전원 주택 몇군데. 지난번 공간 설치전에서도 벽화를 그렸거든요. 그러고 보면 벽화를 그리는 행위와 표현되는 느낌을 아무튼 좋아하는거 같아요. 벽화 작업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영상으로도 남겨두고 있구요.
작업실 나가시면 옆에 조그마한 벽화도 있어요. 첫 눈 오는 날 일부러 작업을 한 건데 재밌었어요. 벽화는 사실 의뢰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죠. 그 벽화작업들을 하고 나니 "캔버스를 벽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몇 해 전부터 그래서 샌드 재료를 사용하게 된거죠.
Q.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전환하셨어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을까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었어요. 디자인과 개인작업 그 두가지의 시너지가 오랫동안 좋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두 분야의 밸런스가 너무 좋았거든요. 순수 영역이 디자인 영역에 영감을 주고, 디자인 영역이 시대의 흐름을 순수 영역에 전달함으로서 공감대 형성을 더 쉬이 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경력이 쌓이면서 브랜드의 디렉터가 되어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더 이상 작업을 병행하기에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오더라구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상태랄까요? 그 때 딱 회사를 그만 둔 것 같아요.
Q. 지금은 후회 안하세요?
네, 아직까진 없어요. 지금은 마담규 라는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스튜디오에서 제가 하고 싶은 작업도 하고 디자인도 하니 기업에 소속 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Q. 만약 작가가 아니였다면, 다른 직업이나 하고 싶었던 분야가 있으세요?
있어요! (웃음) 노래는 엄청 못하지만 싱어송라이터요. 아니면 글쓰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하거나 일을 기획 할 때 워딩을 되게 많이 고민하는 편이예요.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지만, 책을 읽다가 워딩이 툭 튀어 올라올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런것들 을 정리 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그림만큼 글도 좋아하는것 같아요.
아까 왜 먼저 싱어송라이터를 이야기했냐면, 시나 소설, 에세이를 썼겠지만 작사도 했을 것 같아서요. 작사도 했으니까 이왕이면 곡도 써봐야죠! 아이유처럼? 이건 저의 지금 작업들하고도 연결이 되는것 같아요.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걸 좋아 하나봐요.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은 거죠. 노래는 못하니까 싱어송라이터는 다음 생애에 하는걸로 할께요.(하하)
그리고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아트북은 언젠가 꼭 만들어 보고 싶어요!
Q. 애정하는 책도 많으실 것 같아요. 책 몇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첫 번째는 시인 백석 의 시집 ‘사슴’
백석과 자야의 유명한 러브스토리는 아시죠? 역사적으로 힘들었던 시대의 은유적 분위기 ,그때의 사람들,그리고 개인의 감정을 길지도 않은 글 들에서 전부느낄수 있어서 너무 좋아해요.
두 번째는 안데르센 특히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이 더해진 ‘백조왕자’
너무 억울하고 슬픈데 극적으로 해피엔딩이쟎아요. 읽을때마다 손에 땀을 쥐어요.
세번째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이렇게 살아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랄까? 오래된 주택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참으로 덤덤하고도 따뜻하게 표현한 책이예요.
마지막으로 데미안이요.
데미안은 고전이지만 읽을때마다 신선해요. 매번 다른 글귀에 밑줄을 긋는다고나 할까요? 사람과 사람은 무엇인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수 있느냐를 생각하게 되죠 .
공통점을 보니 사람, 공간, 오래된 것, 관계 모두 이런것들에 대한 책이네요.
마담규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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